빨대의 구멍 개수

이 글은 다음 내용을 다루어요.

  • 빨대의 구멍 개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 위상수학

(평범하게 생긴) 빨대의 구멍 개수는 인터넷 상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주제이고,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다룰 거예요. 이 글은 수학적으로 엄밀하지도, 그렇다고 비수학적이지도 않은 거친(rough) 글이에요. 만일, 글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부분 요약을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기존에 있었던 빨대의 구멍 개수에 관한 유명한 주장에 대해 알아볼게요.

  • 빨대의 구멍은 0개다. (∵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형태이고, 구멍은 손상 등을 가졌을 때 사용한다.)
  • 빨대의 구멍은 1개다. (∵ 빨대는 띠 혹은 도넛과 위상동형이고, 이들은 구멍이 하나다.)
  • 빨대의 구멍을 2개다. (∵ 빨대의 양 끝에 있는 것 각각이 구멍 하나를 이룬다.)

제 생각으로는, 셋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다른 경우들을 명백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각 주장과 본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려 해요.

0. 빨대의 구멍은 1개다.

먼저, 수학적인 요소가 잘 알려져 있는 “빨대의 구멍은 1개다”에 관해 알아볼게요.

이 주장을 수학적으로 엄밀화 하는 것은 가능해요.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상공간의 fundamental group이나 (path-connected space에 대해서는 이것의 아벨화에 해당되는) 첫 번째 (singular) homology를 사용하면 될 것 같아요. (한 시점의 현실은 대충 3차원 유클리드 공간으로 생각될 수 있고, 모든 물체는 subspace topology로 위상공간을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Genus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compact 2-manifold 정도에 한정되어요.) 물론, 이러한 group이 조금 이상하게 생긴 위상공간(e.g. 클라인 병, real projective space)도 있지만, group 자체를 구멍 개수라고 생각하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추상적인 방법을 도입하거나, 충분히 좋은 위상공간만을 고려해서 group의 rank를 구멍 개수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작동해요. 예를 들어, skeleton으로 finite graph를 가질 수 있는 공간에서는 구멍 개수가 잘 정의되어요. (3차원 유클리드 공간에 embed되는 compact 3-manifold에 대해서 잘 작동할 것 같은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방법의 가장 큰 허점은 “구멍 개수는 topological invariant이다”, 즉 두 위상동형인 물체는 구멍 개수가 같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이상해보일 수 있는 예시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에요. 특히, 이렇게 정의한 구멍은 국소적인 정보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불편함을 초래하게 되어요. 예를 들어, 구(sphere)에서 (물론, 공집합이 아닌) 작은 (열린) 원판을 떼어냈다고 하면, 분명히 구멍을 낸 것 같은데, 남은 공간은 닫힌 원판과 위상동형이 되어, 앞의 정의에 따른 구멍 개수는 여전히 0이에요. (구의 구멍 개수가 -1이면 말이 되긴 하지만 말이에요.)

구에서 작은 원판을 떼어낸 도형, 원판과 위상동형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실제로 증명 가능하다. Geogebra 3D를 이용해 그린 그림.

즉, “국소적 구멍”이 “대역적 구멍”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고, 수학적으로 말하면 not simply connected, but locally relatively simply connected인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위 논의에서 사용했던 “구멍 뚫기”를 (대충)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어요.

Definition. (충분히 좋은) 두 위상공간 Y \subseteq X와 simply connected open set U \subseteq X에 대해, Y(U에서) X에 (열린) 구멍을 뚫은 도형이라는 것은, X \setminus Y \subseteq U가 (open이고) simply connected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해요. 특히, Y \setminus X의 fundamental group/first homology group의 rank가 n인 경우, “구멍을 n개 뚫었다”라고 표현해요.

다음으로, 국소적 구멍에 초점을 맞추어볼게요.

1. 빨대의 구멍은 2개다.

이 주장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역시 수학적으로 엄밀화 하는 것이 가능해요. 바로, 빨대를 manifold with boundary로 본 후, boundary component 개수를 세는 것이에요.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빨대의 “중심이 아닌 부분”들을 모은 것을 빨대의 경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빨대는 이러한 경계가 크게 두 덩어리(원 두 개)로 나뉘니 구멍이 두 개예요.

제가 manifold theory를 잘 모르기 때문에 rough하게 스케치하자면, 이렇게 정의한 구멍 개수는 국소적으로 잘 작동해요. 그러니까, 국소적으로 구멍을 하나 뚫으면, 앞의 경우와는 달리 정말로 구멍이 하나 더 생겨요. 하지만, 이 정의 역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닫힌) 원판의 구멍 개수가 하나가 되어버려요.

원판과 이것의 경계(굵은 빨간색 선), 앞의 정의에 따르면 원판의 구멍 개수는 1이다. Geogebra로 그린 그림.

2. 빨대의 구멍은 0개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다룰게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명제를 “구멍은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값이다”라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고, 저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결국, 구멍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은 상대적인 정의를 생각했어요.

Definition (구멍 개수). (충분히 좋은) 두 위상공간 Y \subseteq X에 대해, XY로 만들기 위해 뚫어야 하는 구멍의 최소 개수를 X에 대한 Y의 구멍 개수라고 해요.

그렇다면, 원판에는 어째서 구멍이 없는 걸까요? 먼저, (앞의 정의에 따른) 원판의 구멍 개수를 알기 위해서는 원판을 포함하는 어떤 (좋은) 공간을 생각해야 되어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자신(원판)이에요. 그런데, X=Y일 때는 자명히 (X에 대한) Y의 구멍 개수는 0이고, 따라서 원판의 구멍 개수는 0이에요. 상대적인 정의지만, 공간 X는 자주 생략하기로 해요.

뿐만 아니라, 이 정의는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줘요. 예를 들어, “빨대의 구멍 개수는 0개다”라는 주장에 “빨대는 정상적인 형태다”라는 근거가 있었는데, 이 문장은 전체 공간 X를 자연스럽게 Y로 두겠다는 것이고, 그러면 구멍 개수는 당연히 0이지요.

또, 도넛의 구멍 개수는, X를 일반적인 빵 형태로 두면, 1이 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고, 비슷하게 빨대의 구멍이 한 개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X를 (속이 가득 찬) 원기둥으로 둘 수 있어요.

빨대의 구멍이 2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빨대의 두께가 0이라고 가정할 경우, X를 “빨대의 양쪽 구멍을 원판으로 막은 공간(원기둥의 표면)”이 이 의견을 지지할 것 같아요. 두께가 0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공간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앞의 fundamental group/first homology group을 이용한 정의나 boundary component 개수를 이용한 정의들이 일치하게 되는 “좋은 공간”을 잘 정의할 수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 (현실적인 물체 중 반례가 되는 공간이 있다면 조금 슬플 것 같아요.)

요약

저는 구멍 개수가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값이라고 생각해요. 물체 Y의 구멍 개수를 세기 위해서는, “구멍을 뚫을 물체 X“를 생각해야 하고, 이 때 (X에 대한) Y의 구멍 개수를 “XY로 만들기 위해 뚫어야하는 최소 구멍 개수”로 정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일반적인 빵에 대한) 도넛의 구멍 개수는 한 개가 되겠지요. 빨대의 구멍 개수 문제는 어떤 공간을 X로 택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혼동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다음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만일 X로 빨대 자체를 선택한다면, 더 뚫을 구멍이 없으므로, 빨대의 구멍 개수는 0이 되어요. 이에 따라, “빨대는 정상적인 모양이다”라는 앞의 근거를 “X를 자연스럽게 Y로 둘 수 있다”로 해석할 수 있어요.

만일 X로 (내부가 채워진) 원기둥을 선택한다면, 구멍을 하나 뚫으면 되므로, 빨대의 구멍 개수는 1이 되어요.

만일 X로 “빨대의 양 끝을 원판으로 막은 도형(원기둥의 표면)”을 생각한다면, 빨대의 구멍 개수는 2가 되어요.

이 모형이 많은 경우 잘 작동하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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